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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졸리기 때문에 숨이 멎지는 않아.”

 

 

팬텀은 드물게도 잠시나마 할 말을 잃었다. 푸른 눈은 여전히 ‘좋은 사람’의 모양을 띄고 있었다. 눈꺼풀이 한번이나 깜빡였을까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프리드는 담담하게 팬텀에게 눈을 맞추었다. 으스대는 언사가 아닌, ‘별이 빛나고 있어’와 같은 평이한 말투였다. 그러니까, 피곤하다고 마법식 계산에 오류가 생기는 일은 없다 이거지. 자신에게는 호흡과 마찬가지라고. 능력의 울타리가 헤아릴 수 없이 멀기에 그건 오만이 아닌 명백한 자신이었다.

 

 

프리드는 꼬박 사흘의 밤을 지새웠다. 식사랍시고 말라비틀어진 빵을 씹는 모습에 팬텀은 기겁을 하며 근사한 만찬까지 대령했다. 고맙다고 말하는 본인은 정작 호화스러운 연료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심드렁하게 스프를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한숨 자라고 권유해도, 그 놈의 ‘조금만 더’는 물러날 기미를 안 보였다. 알아, 너의 ‘준비’가 짧은 세레나데가 아니라 교향곡이라는 소리인 걸. 그러나 수면부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연주자가 쓰러진다면 공연 자체가 망가져버릴 거다. 그리 되면 아리아조차 부르지 못한 자신은 또 뭐란 말인가.

 

 

“힐러로써 조언하자면, 멎을지도 몰라. 네 상태라면.”

“도대체 언제부터 힐러로 전직한 건데?”

“저번 주에 마을에서 예쁜 힐러 아가씨를 만난 후부터지.”

 

 

못 말려. 입술이 성가시다는 듯이 달싹거리는 것을 빙긋 웃던 팬텀은 놓치지 않았다. 누가 대체 못 말리는 사람이래?

 

 

당연하게도 프리드의 모습은 이제 막 태울 장작처럼 푸석했다. 피곤이 쌓인 눈가가 새파랗다 못해 검고, 자신하던 호흡까지 발을 질질 끌었다.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조리 작업에 돌리고 있는 듯 했다. 체력이 약해 그 에너지조차 적으면서 말이야. 인내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꽤나 무모한 면도 적지 않다. 바로 다음 순간이 마감시한이라는 듯이 죽을 듯이 달려드는 모습이 참 그랬다. 스스로 만든 배수진이라는 것은 희미하지만 또한 깊어서, 팬텀은 그러한 프리드가 위태로워보였다.

 

 

그럼에도 팬텀은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피곤에 찌든 착해빠진 얼굴 속에, 덫을 살피는 사냥꾼의 눈이 새파랗게 날을 새웠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밀린 숙제를 하는 아이처럼 종이에 못 알아볼만한 수식을 휘갈기는 것이었지만, 필시 검의 날을 가는 행위다. 적의 숨통을 죄이고 한 번에 끊어낼 날카로운 검을.

 

 

“어설픈 힐러 씨. 심심한 것 같은데 이거나 깎아주시겠어요?”

“고집불통 법사님의 말씀이면 따라야겠지요.”

 

 

 

먼저 농을 건넨 프리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연필을 건넨다. 나 참, 병수발 드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람. 도리어 잠을 못잔 팬텀이 씩 웃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와 손을 잡은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고, 함께 하는 첫 전투는 며칠 후였다. 그동안 팬텀이 한 일이라고는 정보통이 되는 것뿐이었다. 팬텀은 의구심을 품었다. 그는 조급했고 한시라도 빨리 조커를 빼들어 상대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뻥 뚫린 마음이 타들어가는 듯 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바싹 타버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정의 잿더미로 전락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팬텀은 자신이 프리드가 스스로를 아끼길 원하는 것인지 소모하길 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뒷모습을 샅샅이 훑으며 무언의 채찍을 휘갈기고 싶었다. 너는 내 목적의 필요조건이야, 라고 무자비하게 속삭이면서. 그러나 때로는 마법진을 짜는 파리한 손등이 딱했다. 몸 상태를 살피고 강제로라도 휴식을 취하게 하고 싶었다. 팬텀에게 있어서 이 미묘한 감정의 모순은 가슴 한가운데에 활활 타는 불길에 비하면 진실로 사소한 문제였기에, 그는 그곳에서 눈을 돌렸다. 프리드를 걱정하는 것 역시 결론적으로 최상의 수단을 노리는 것이다.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계획에도 차질이 오니까. 이렇게 각각 반대 방향으로 발을 구르던 모순을 질끈, 묶어버리는 것이다. 둥글게 말린 매듭이 빙글빙글 돌았다. 팬텀은 프리드에게 사소하나 진심어린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의 옆에 자리하며 추이를 지켜보았다. 이는 꽤 모순적이지만 팬텀에겐 가장 정답에 가까운 선택지였다. 보호하는 동시에 감시한다.

 

 

프리드는 팬텀이 어떤 태도를 취하던 저지하지 않았다. 지독히도 차분하게, 프리드는 종종 팬텀이 자신에게서 눈을 돌릴 때 가볍게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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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1편으로 쓰려고 했던 프리드 단편. 자체 설정 충만.

 

 

 

 

 

 

 

 

 

 

 

 

 

 

 

 

 

서두 序頭

 

 

 

 

 

 

 

 

 

하얀 입김이 바람결에 흐드러졌다. 찬 공기에 더운 공기를 불어넣으면 보이는 흰 연기라니, 제 속이 그래도 아직은 따듯하구나, 프리드는 실소했다. 양볼은 이미 뻣뻣하게 얼어붙었고, 스태프를 쥔 손바닥은 아까부터 내내 화끈거리다가 지금은 감각조차 없다. 예상치 못한 추위는 배로 가혹하다. 마법사 로브는 마력의 운용을 도와주는 데에는 꽤나 쓸모가 있었지만 하찮디 하찮은 인간의 온기는 붙들어주지 않는다. 역시 뭐라도 사서 걸치고 와야 했나. 몸을 가볍게 챙기려다 이게 무슨 봉변이람.

 

 

추운 날씨에도, 호수는 얼지 않았다. 언뜻 보면 바다로 보일 정도로 큰 크기 때문인지. 혹은 그 안에 요동치는 마력 때문인지. 무엇 때문이든, 호수는 얼지 않고 매서운 바람에도 잔물결조차 없이 고요했다. 프리드는 구름도 비치지 않은 호수를 그만큼이나 잔잔한 눈동자로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얼지 않은 물을 탓해서 무어하리. 결국 요동치는 건 사람의 마음뿐이다. 자박자박, 제 그림자만이 길에 늘어진다. 하얀 입김만이, 온기도 없는 그 형체만이 옷자락을 물고 늘어져 그는 괜스레 마음의 바닥을 긁어내어 입 밖으로 모조리 쏟아내고 싶었다. 기껏해야 내쉬는 건 한숨뿐이었지만.

 

 

"왔는가?"

 

 

가슴에 울리는 깊은 목소리. 프리드는 풀이 죽은 아이의 그림자를 떨쳐내려고 애쓰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호숫가에 거대한 꼬리를 적실 듯 말듯하게 몸을 웅크린 거대한 드래곤이 보였다. 이질적인 장소에서 익숙한 형체는 프리드에게 위안을 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작은 안도와 그럴 줄 알았다는 신뢰가 얽혀든 음성에 드래곤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의 마스터는 성숙해보여도 순간순간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어서, 완전히 마주하기 전에 말을 걸어주면 신이 나서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아프리엔은 그것이 썩 마음에 들어서 심심치 않도록 느릿느릿하게-아프리엔의 시각에서- 다가오는 그에게 어서 오라는 의미로 말을 걸곤 했다.

 

 

"볼일은 다 끝났나?"

 

 

노란 동공이 지루하다는 듯 천천히 프리드를 훑었다. 프리드의 자세, 분위기, 손의 모양과 어깨의 형세, 발을 딛는 방법 등으로 미리 답을 받았다. 언어보다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이었다. 프리드는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내뿜은 짧은 입김과 흥미 없다는 듯 내려진 꼬리, 눈동자의 미세한 수축으로 답신을 받았다. '그것 봐라.' 혹은 작은 코웃음. '내가 뭐랬나?'

 

 

"그래. 다 끝났지."

 

 

약간 오기가 생겨 프리드는 입 밖으로 내어 말하곤, 도리어 제 답에 제가 힘이 빠졌다. 이제 어찌 여기서 손을 쓸 도리가 없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서, 특히나 자기 자신이. 드래곤은 그를 찬찬히 살폈다. 예상된 결과였지만 발 벗고 나서 실망을 산 그가 걱정스러웠다.

 

 

"루더스 왕국은 거절했어."

 

 

한숨을 집어삼킨다. 호수를 감도는 날씨만큼이나 차디 찬 좌절을 집어삼킨다. 프리드는 가볍게 고개를 털었다. 감각이 없는 손마디를 구부려 스태프를 다부쥐었다.

 

 

"아직도 호수 정중앙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 해."

 

 

 

 

 

 

 

 

 

 

 

 

 

 

 

 

 

 

 

"여긴 안전하다고 생각된다네."

"루더스 호수 정중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왕은 자세히 보아야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턱을 주억거렸다. 그리곤 붉은 벨벳 의자에 작은 몸을 묻고, 앞에 곧게 선 대마법사를 응시했다. 그 자는 오시리아 대륙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며 협력을 요청했다.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니? 왕은 눈에 보이게 코웃음을 쳤다. 이곳은 루더스 호수. 몬스터, 흑의 마법, 이웃 나라에게 내려진 저주, 수없이 많은 위험서린 폭풍들은 모두 호수에 천천히 가라앉아 버린다. 신이 내린 축복의 물이다. 어떤 세력도 왕국의 안전을 해치지 못한다. 그런데 평화의 물 위에 떠있는 이 왕국에게 전쟁 참가라니. 우습지도 않은 구걸이었다. 앞에 선 이 자는 퍽 진실 된 눈으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간절한 호소력은 왕국의 이해관계 속에 짙게 스며들지 못했다. 안과 밖의 경계가 철저한 왕국이었다. 이웃나라가 망한다면 잔을 닦고 축배를 준비해야지, 실체도 불명확한 검은 마법사에게 굳이 창을 빼어 들어야 하는가?

 

 

대마법사는 어지간히 끈질기고 포기를 모르는 자였다.

 

 

"크리티아스가 한순간에 멸한 것을 아십니까?"

"뭐, 그렇다는 건 전해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크리티아스는 루더스 호수와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습니다. 미나르 숲과 니할 사막이 그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죠."

"헌데?"

"이 방면의 호숫가는 원래 온난한 날씨가 한 해 내내 이어진다고 들었습니다. 또 과거에 몇 번 방문했기도 하고요. 따듯했던 날씨가 지금은 겨울과도 같습니다. 호숫가에 살고 있던 식물들도 바싹 얼었습니다. 이를 아십니까?"

 

 

그는 왕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유순하게 생겨서 꽤나 당돌했고, 꽤나……성가셨지. 왕은 턱을 괴곤 내려 보았다. 부드러운 눈매의 남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마치 크리티아스의 삭막하고 얼어붙은 날씨처럼 말입니다."

"해서, 호수가 얼었는가?"

"폐하."

"호수가 얼었느냐 물었네."

 

 

 

 

 

 

 

 

 

 

 

 

 

 

 

 

아프리엔이 길게 웃음을 흘렸다. 겉보기에는 얇은 바람소리였지만 함께한 프리드에게는 역시나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권력을 쥔 인간에게 큰 기대를 하면 안 돼. 거대한 용은 그리 말했었다. 제 몸만 불리려고 애를 쓸 뿐이야. 그럼에도, 괜한 고생만 하더라도 프리드는 시도조차 단념하기는 싫었다. 그건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다. 아무리 답이 없어 보여도, 마지막으로, 마지막의 마지막이라도.

 

 

그 시도가 지금의 꼬락서니를 낳았지만.

 

 

"그래, 네 예상대로 허탕치고 왔으니까 그만 웃어."

 

 

프리드는 약간 불퉁해진 말투였다. 그는 아프리엔의 팔 치에 앉아 딱딱한 비늘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드래곤이 태도를 바꿔 몸을 둥글게 막았다. 아마 작게나마 위로하는 것이리라. 프리드는 더욱 깊숙이 차분한 그늘에 몸을 묻었다. 거대한 날개에 바람이 막아져서 약간은 따듯해진 기분이다. 이렇게나 추운데. 망할 성에서 나오기만 하면 알 터인데. 애꿎은 신발코만 돌을 쿡쿡 찌른다.

 

 

 

프리드가 아무리 다방면으로 위험을 끌고 눈앞에서 풀어내어도 루더스 왕은 요지부동이었다. 연합을 어떻게 믿는가, 니할 왕국이 수를 쓴 게 아닌가, 엘나스도 연합에 참여했는가, 했다면 안 해야겠군, 안 했다고? 역시 안 해야겠군. 종국에는 보태줄 힘 따위 없다고 딱 잘라 프리드를 내쳤다. 프리드의 설득에 어느 정도는 수긍하는 표시였지만 다른 세력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두터웠다. 그리고 호수가 얼지 않았다고, 다른 데는 몰라도 그의 왕국만은 안전할 것이라고 거만하게 장담을 했다. 프리드는 왕의 멱살을 잡고 대륙 반대편으로 데려가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당신의 터전 역시 이리 변할 것이라고. 소모적인 경제권싸움은 뒷일로 미뤄두고, 정말 급한 현재의 참상을 두 눈으로 마주하라고, 진실을 피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왕국은 모두가 남의 일이라고 단언하며 중앙 문을 내걸었다. 양방향으로 맞춘 지독한 고립이었다.

 

 

 

"네가 호수 물을 모두 마셔버리면 어떨까?"

"……."

"그럼 모두 육지가 되서, 호수가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는 못할 텐데."

"농담이 나오는 걸 보니 멀쩡하군."

 

 

하하. 프리드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힘차진 않았지만 기분 좋은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였다. 억지로라도 기분을 박차고 잃어나려는, 실망을 삼켜내고 자리를 털려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프리드는 작게 고개를 튕겨 드래곤에게 동동 노크를 했다.

 

 

 

세력이 하나둘 모아져 탄생한 연합은 결국 새로운 세력으로 몸을 불리곤 검은 마법사와의 직접적인 대치를 피했다. 숙련된 전투원은 너무나 적었고 그마저도 통솔되지 못하자 남은 건 오합지졸일 뿐이다. 윗선은 책임을 너도나도 회피하며 미루고 첩자들은 발각되기도 전에 도망치고 말았다. 왕국간의 무관심과 기득권들의 반감은 그마저 있는 연합의 단결력을 이리저리 흩어지게 했다. 이리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권력 구도와 이해관계 속에서, 종족을 잃은 드래곤 한 마리와 아직 정치적인 입지를 얻지 못한 마법사 한 명은 대강 써먹기 좋은 소모성이 짙은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 연합이라도 어찌 살려보려던 노력이 그를 여러 왕국으로 밀었다. 어쩌면 조금 더 시도하면 그나마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몰랐다. 끊임없이 커다랗고 두꺼운 문을 두드리면. 참혹한 현장을 담은 수정 구슬을 눈앞에서 깨뜨리면.

 

 

"네 말이 맞아. 여기에 매달려있어도 무언가 수확이 있겠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들에겐, 아니 세상에겐 이제 시간이 없다. 륀느의 모래시계 윗부분에는 그저 모래 알갱이 몇 톨만 남아있을 터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황금 모래알갱이. 곧 좁디좁은 통로를 통과해 잿가루로 흩날릴 운명의, 마지막 희망의 티끌들. 그 광경이 그에게만, 소수의 몇 명에게만 비춰진다는 것이 야속했다.

 

 

"아예 다른 각도에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그럼에도 시간이 없다. 그 소수의 몇 명이라도 찾아 새로이 길을 나서야 했다. 아예 모래시계를 뒤집어 새로운 시간을 일굴 기회를 잡아야 한다. 희망의 싹을 틔우고, 턱없이 부족해도 온몸을 내던져 부딪쳐 흐를 수 있는 힘. 최후의 수단은 언제나 미약하지만 가장 강력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덧없는 소망이라 하여도. 작디작은 인간의 손이라도 무언가를 긁어모을 수는 있을 터다.

 

 

"그대가 원한다면."

 

 

아프리엔이 그의 의중을 알아채곤 짧게 말했다. 깊게 내쉬는 숨에 비늘이 바르르, 비행을 준비한다. 계약자는 낮은 곳에서 드래곤에게 가만히 이마를 대고 허락을 구하곤, 너른 등에 몸을 올렸다. 제련되지 않은 숨결이 상공을 메운다. 바람이 몸을 풀어 흐르고 또 흐른다. 바람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의사를 묻듯이 드래곤의 가장 작은 날개가 펄럭거리자,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매끄러운 가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산맥으로 가자, 아프리엔. 거기부터 시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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