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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는 늘 그렇듯이 익숙함을 가장하며 피부에 스며든다. 이질적인 여름은 어느새 발목 언저리까지 자란 잡초가 되어 뻔뻔하게 아란의 삶을 비집고 들어왔다. 허울 좋은 일상이 상상 속의 풍경이리만치 이질적이어도, 그는 그것을 애써 기분 나쁜 악몽으로 치부하지도 않았다. 사소한 불만이나 도피 없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네 장점이라고 생각해. 그에게 퍽 과분한 감상이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그래, 그 말을 빌어서 아란은 사소한 불만이 없는 이였다.

 

 

잠 못 드는 여름밤은 드물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 거의 매일이라고 칭해도 좋을 정도였다. 언제 자냐는 질문에 “곧.”이라고 심심하게 대답하며 자리를 지키다가, 지키다가, 계속 그리 지켰다. 감정이 일지 않는 표정과는 달리 신경은 온통 곤두선 채였다. 그는 달려드는 무언가를 베기도 했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주시하기도 했고, 전해오는 무언가를 받기도 했다. 그 어떠한 무언가도 없을 때에는, 아란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는 다방면의 관심거리보다는 깊디깊은 사고의 우물을 파는 인간이었다. 무엇을 하던 그것은 막연한 책임감에 뿌리를 두었다. 어떠한 이도 요구하지 않은 호위는 습관적이었으나, 누구와는 다르게 좋은 체력은 가뿐히 그의 밤을 감출 수 있었다.

 

 

이렇게 종종 들키는 밤도 있지만. 숨을 죽인 발소리가 공 들인 게 보여서, 아란은 잠시 모른 척 해주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바스락거리는 서툰 소리는 프리드가 확실하였으나, 이유 없이 몇 초라도 빨리 제 예상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란은 선뜻 다가오는 프리드를 동요 없이 응시했다. 특유의 새파란 안광 덕분에 오히려 프리드가 약간 놀랐다. 동그랗게 눈을 떴다가, 조금 실망스러운 듯 슬쩍 웃었다. 그 미소에 물렁해진 아란은 그의 어설픈 습격에 속아줘야 했을까 잠시나마 후회했다.

 

 

“방해였다면 미안.”

“전혀.”

 

 

프리드는 그의 곁에 풀썩 앉았다. 종이 두세 쪽 만큼의 시간동안, 대마법사는 고민을 어둠 속에서 풀어헤쳐놓고 그에 대한 답을 가만가만 고르는 듯 했다. 침묵이 편안한 상대이기에 아란은 그저 프리드의 귓바퀴 모양을, 뻗친 머리칼의 방향을, 뜯어봐야 간신히 발견할 수 있는 솜털을 응시하다가, 제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속하게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바로잡았다. 왜인지 지금 보이는 풀잎들은 희미하게 그 빛을 잃고 아까의 잔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옅은 살결과 그 밑에 선선히 맴도는 숨결을. 그는 딱히 다른 생각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고 그 광경을 꾹꾹 내리 씹었다. 여름 공기에 익은 풀내음이 났다.

 

 

옆에 앉은 이가 제 마음속에 무얼 쌓아두던, 프리드는 그저 편안해보였다. 무언가를 골똘히 궁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어려운 수를 두는지 톡톡 엇나간 리듬으로 무릎을 두드리던 손가락은 제 길을 찾았다는 듯 자연스레 물꼬를 텄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멀고 먼 생각에 폭 빠져있었던 주제에, 프리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가까운 행보를 골랐다. 고민 없이 자리 잡은 손가락들이 슬금슬금 뻗어나가 옆에 앉은 이의 것을 톡톡 두드린다. 능청스러운 손가락과는 달리 얼굴은 참 말갛게 착해빠져선,

 

 

“혼자 있고 싶어?”

 

 

라고 사려 깊은 척 물어보는데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아란은 참으로 ‘아니’었지만.

 

 

“아니.”

 

 

어깨에 닿아온 머리칼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흰 옷자락이 바스락거리다가 시야 속에 버티고 섰다. 바깥 공기에 약간 식은 두 손바닥이 두 뺨을 감싸 들어올렸다. 얇은 꽃잎을 만지듯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에 아란은 차마 고개를 뒤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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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테그 조각글.

프리드가 먼저 멘션되어서 프리아란 느낌으로 했다.

진도가 안 나가서 흑흑 오열하다가 올리긴 해야할 것 같아서 이제서야 올림. 완전한 글이 아니라 죄송합니다ㅜㅜㅜ조각글이 한계다ㅜㅜㅜ

 

난 프리드 공도 좋다 하하

 

옵션은 진중한 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