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上
흐릿한 등이 밝히는 주점 안은 온갖 향기가 버무려져 있었다. 향유에 절인 기름종이 쪽이 조금 더 취향이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예민한 후각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강렬한 향기인 알싸한 술 냄새를 풀어내면 따끈한 국물 내음과 고깃기름냄새를 쉬이 찾을 수 있었다. 와인이 값비싸 맥주에 달음질한 고깃덩어리들, 향신료가 값비싸 꺾어온 톡 쏘는 향의 이파리들, 상기된 뺨의 아낙네들이 가져온 여러 과일들. 온갖 음식들은 사람들의 기대어린 눈망울들과는 상반되게 썩 좋은 품질은 아니었다. 요컨대, 식량이 없는 판국에 아끼고 아끼다가 겨우 낸 음식들이다. 바닥을 들어낸 항아리를 걱정하지 않는 웃음소리와 근래 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던 팔팔 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눈과 귀에 담으며, 남자는 쉬이 추론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거둔 승리였다. 마을에 발을 딛기만 해도 희망이 혀에 감도는 듯 했다.
흠. 남자는 덩달아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어찌되었던 간에 소문만은 사실이었군. 품 안의 금화들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즐거운 소음에 묻힌다. 이 돈은 옆 마을 몫이 되겠네.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가, 이곳의 술이 입에 맞을지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고민을 길게 끄는 유형이 아니었다. ‘외출’할 때의 검은 장갑을 낀 손가락들을 경쾌하게 튕기자 금화 하나가 높게 공중제비를 뛰었다. 남자는 당연하고 가볍게 금화를 제 손바닥에 착지시키며 소소하지만 근사한 순간이 온전히 제 것이라는 듯 굴었다. 행주로 술잔을 닦던 소녀가 감탄을 숨기지 못하는 걸 부드럽게 보며, 그는 말했다.
“아가씨, 아무거나 한 잔 주시겠어요?”
곧 술이 들어갈 목소리가 이유 없이 지저귀는 것 같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남자는 정말 말도 안 되게 큰 잔을 보고 난감하게 웃었다. 한 번에 해치우긴 글렀군. 그는 술잔 속을 내리보았다. 보랏빛 눈동자가 탁한 표면에 둥둥 떠 무심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 영웅님이 말이지! 그때 따악-드래곤과 함께 도착했단 말이지! 남자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술잔에 털고 조금 더 흥미로운 이야기에 정신을 쏟도록 마음먹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도 텅 빈 시선이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심한 감상이군. 한 모금을 들이키려던 것이 이어이어 꿀꺽꿀꺽 넘어간다.
그러니까, 그때 영웅님이 오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지금 황천행이란 말이요. 아무렴! 그 건장한 분도 정말 호탕하셨지. 난 그렇게 빠른 도끼는 처음 봤어! 도끼가 뭔가, 도끼가? 그걸 도끼라 부르는 자네도 참, 촌놈이군 촌놈이야. 그럼 네놈은 그게 뭔지 아나? 쩍, 하고 가르면 그게 도끼지 뭔가. 아, 사람만한 도끼가 어찌 도끼인가?
남자는 픽 웃었다. 드래곤에, 사람 몸만 한 도끼에, 아주 개성 넘치는 조합이다 싶었다. 사실은 반쯤 괴상한 과장으로 치부했지만, 뭐 썩 재밌는 이야기였다. 그럭저럭 술안주 삼을만한.
그런데 진짜 드래곤이란 말인가? 드래곤이 인간과 함께 다니다니? 참, 내가 봤대도 그래. 몸집이 산만 해서 여기 있는 사람이 거진 보았을 터네. 자네 말을 믿을 수 있어야지. 저번에는 엘프도 봤다고 하지 않았나? 우스워서 진짜. 내가 허풍을 친다는 겐가? 진짜 영웅들은 그렇다니까? 내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진 믿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 영웅들은 벌써 떠났는가?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감칠맛이 입 안을 감돈다. 남자는 입맛을 다시며 왁자지껄한 주민들을 훑었다. 수많은 정보가 휘몰아친다. 남자는 습관처럼 머릿속에 정보를 빼곡히 적었다. 술내가 나긴 나지만, 언젠간 쓸모가 있겠지.
그래, 정말 영웅들이 벌써 떠났나? 제 본질 중 하나인 호기심이 능글맞게 고개를 들었다. 주변에 묵을 곳 하나, 공터 하나 없는 이곳을? 듣자하니 좋게 말해서 영웅, 나쁘게 말해 정치적 입지 하나 없는 외톨이 집단이 변변찮은 포션 조달도 없이? 하긴, 실력이 거의 괴물 수준인데다가 그 ‘드래곤’을 타고 다 같이 날아간다면 또 모르지만. 머릿속으로 다시금 읊어도 우스운 내용이라, 남자는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굳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또 궁금한 것이라, 남자는 심심풀이 삼아 눈을 떴다. 기이한 빛이 홍채에 유려한 문양으로 발하자, 남자의 시야 속에도 사람들이 휘감은 마력이 제각각 선명하게 보였다. 주점 안의 사람들은 거진 평범한 수준의 청색과 홍색, 녹색과 갈색을 띄었다. 확실히, 이 사람들만으로는 근래의 몬스터를 쉽게 상대하진 못하겠군. 남자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강렬하고 공격적인 금빛 마력은 노려보고 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고요하게, 주변을 가늠하며, 아직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아니 이빨을 드러낼 필요조차 없는 집요하고 정확한 시선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힘을 생각하면 한없이 뻗어나갈 법도 한데, 답지 않게 정갈하게 경계를 지켰다. 기가 질릴 정도였다. 여태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무색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사람들에 가려진 주점 구석으로 걸음을 향했다. 이 자는 필시, 그 대단하신 영웅이거나, 아니라면 적어도 대단한 실력자일 것이다. 남자가 여태 만나본 실력자는 대부분이 썩 선량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언제든지 케인을 쥘 준비를 하였다. 남자는 차분하게 경계태세를 취하며 마력의 근원과 마주했다. 어떤 자일까? 날이 선 긴장을 태연함으로 감싸야 할 때다.
그러나 남자의 예상과는 달리, 정작 마력의 주인공은 온화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생선뼈를 발라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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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은 팬텀이 아리아 만나기 전. 영웅즈는 자잘한 대 몬스터 게릴라 전만 진행하는 중.
이건 팬프팬이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프리드 어디...?
공강이라 너무 급하게 썼다ㅜㅜ으으 下를 언젠가 꼭 이어야 할텐데.
한달에 하나씩 딱 열개로 끝나는 단편모음이 쓰고 싶은데......이렇게 더뎌서야 2년은 잡아야 할 듯. 자체설정도 충만해서 여러 개.....정리해야 한다.................정 안되면 포기하고 그냥 내가 보고 싶은 장면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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