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은 무대의 특등석에 앉아있었다. 높은 단 위에선 옷깃에 풀을 먹인 말끔한 소년들이 제 주인에게 쌍안경을 건네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번듯이 세워둔 객석은 소란스러웠다. 요 몇 달간 귀족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던 혁명군 리더가 곧 처형당한다. 적의 죽음을 앞둔 흥분이 고급원단과 신 포도주 사이에도 저열하게 퍼져나갔다. 찻잔이 서로 부딪치고 치맛자락을 밟고 넘어지는 일이 허다했다. 다른 쪽에선 귀한 발걸음을 행차하신 귀족 나으리의 호주머니를 털려는 소년들이 손을 놀렸다. 어떤 쪽이냐 하면 단연코 팬텀은 후자였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맵시 있게 차려입은 것 빼고는 침을 묻히며 지폐를 세는 소년들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호의 외동아들답게 우아하게 쌍안경을 눈가에 대고는 다리를 꼬았다. 와, 백작은 역시 진주 세공이시군요? 그럼요. 쾰른에서 맞췄답니다. 얄팍한 관심의 안개 속에서 팬텀은 상냥하게 웃어 보이곤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평소엔 닿기도 싫을 소름 끼치는 물건이었지만, 그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만인의 고함과 비애를 휘감고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는 영웅에게서 찾아낼 것이 있었다. 후회, 체념, 단 한 톨의 비굴함이라도. 턱을 빳빳하게 굳힐 곧 죽을 이의 덧없는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피부 끝에서 날뛰는 조바심을 마음껏 자조할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이유 하나라도.
그는 밤에 나도는 사람답게 긴장할수록 손이 떨리지 않았다. 동그란 유리를 통한 풍경이 너무나 또렷하다. 늘 그렇듯이 팬텀만은 프리드를 쉬이 찾을 수 있었다. 바랜 밀빛 머리칼과 핏기없는 허연 얼굴. 단정하게 걷는 모양새가 겉모양만 보면 심한 고문은 없던 것 같다. 허나 워낙 참는 데 도가 튼 인간이라 믿을 수가 있어야지. 당장에라도 셔츠를 벗겨서 사소한 상처 하나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혀를 찬다. 곧 죽일 놈이라도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누군가 그리 지껄이고, 이내 동조의 목소리가 기름 두른 베이컨처럼 요란하다. 너를 죽이고 싶어하는 자들이 여기 한가득이야, 프리드. 그는 조용히 자조했다. 너는 소중한 자들을 위해 죽고 싶다고 했다. 너에게 의지하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그 꿈이 곧 볼품없이 무너질 텐데, 무서워? 영웅을 향한 배웅치곤 건방졌는지 잘되지 않았다. 삐뚜름한 쌍안경 너머로 프리드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두대 앞에 다다른 프리드는 공포에 질려 있지 않았다. 그의 수많은 적을 볼 때처럼, 새파란 눈빛이 자신을 곧 죽일 사람들을 꿰뚫고 있었다.
팬텀은 프리드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그토록 다급한 열망은 없었다. 그는 여유롭던 자태를 내던지곤 벌떡 일어났다. 흥분해서 함께 일어난 귀족들 탓에 눈에 띄는 행동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조바심이 난리를 친다. 간수가 밧줄을 잡아당기자 커다란 칼날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대체 이 얼간이들은 뭐하는 거야? 정말 죽일 셈인가? 아니란 걸 알아도 머리가 멋대로 진입 경로를 계산한다. 난간에서 뛰어내려서 옆쪽으로 파고들어 연막탄을 쏘면. 그는 이미 난간을 잡고 있었다. 가볍게 뛰어내리려는 순간, 어마어마한 굉음과 고함이 광장을 퍼졌다. 화약 냄새가 숨을 틀어쥐면서 피에 목이 마른 무대가 무너진다. 팬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가로질러 단두대 옆에 도착했다. 더러운 성깔에 부싯돌부터 비볐을 이가 떠올랐다.
하여간. 대포는 쏘지 말라니까, 메르세데스.
매캐한 연기는 가시질 않았다. 혼란에 빠진 병사들은 넘어지고 기어가다가 다른 이를 넘어뜨렸다. 눈이 맵고 따가워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다. 팬텀이 준비해둔 물과 회반 가루를 화롯대에 끼얹은 탓이었다. 사람 살려! 누구 하나 죽는 꼴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꽥꽥 소리를 쳐댔다. 팬텀은 씩 웃으며 저도 불을 지폈다. 어디선가 뽑아낸 화려한 모자를 눌러쓰곤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모든 게 빠짐없이 엉망이었다. 게다가 우리 영웅 나리는 다시 손아귀에 떨어졌고. 썩 마음에 들어찼다.
프리드는 꿈을 꾸었다. 몹시 현실적인 배경으로, 그가 일주일 중 네 번은 시간을 쏟아붓던 헛간 구석이었다. 그가 가르치던 꼬마 에반이 때가 누렇게 낀 크라바트를 목에 걸고 뚜벅뚜벅 짚이 날리는 교단을 걸었다. 에반은 인권과 시민의식에 대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권'을 갖고 태어난다. '권리'에는 언제나 '의무'가 수반되고, 이것이 '시민'의 기본적인 '계약'이다. 최근에 발명된 단어뿐인 연설이었는데도 모두가 신기하다는 눈초리도 없이 심드렁하게 듣고 있었다. 프리드가 침침한 촛불 아래서 했던 수업과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그가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은 부활절을 앞둔 것처럼 눈동자에 열망이 있었다. 받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꼽는 것처럼. 그러나 지금은, 에반의 썩 좋은 연설에도 분위기가 지루하고 권태롭다. 개중에는 꾸벅꾸벅 졸거나 따분함을 못 이기고 자리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몹시 당연한 소리를 질리게 하고 있다는 듯이.
그래서 프리드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전히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삶이라도 '평등'이나 '자유'를 낯선 구원자나 요상한 발명품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꿈 꿨던 소박한 미래.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씩, 치열한 투쟁이 당연히 누릴 개념으로 자리 잡힌 삶. 허벅지에 붙은 지푸라기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그는 더 둘러보고 싶었다. 꿈일지라도. 자신이 무엇에 목숨을 걸어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 바로 옆에서 불만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흡족해할 자격은 있나?"
팬텀은 말쑥하게 차려입던 여느 때와 달리 후줄근한 셔츠에 붉은 리본을 가슴팍에 달고 있었다. 닳아빠진 리본은 오시리아 시민군의 상징이었다. 프리드는 눈을 깜빡였다. 꿈속은 혁명이 성공한 이후라, 장식이나 상징이라면 모를까 아무도 붉은 리본을 가슴팍에 달고 다니지 않았다.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면 했지, 프리드의 혁명이 남긴 잔해는 필요가 없을 터였다. 게다가 현실에서 팬텀은 단 한 번도 그 리본을 제 몸에 달고 다니지 않았다. 뻔뻔한 고집으로 치부했던 것이 떠올랐다. 상대가 어리둥절하든 말든, 괴도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읊조렸다. 시민권과 공화국이라, 하!
"넌 항상 그랬어. 다수의 힘을 강조한 주제에, 결정적인 순간엔 너 혼자 어찌해보려고 발악했잖아?"
팬텀은 느릿하게 기지개를 켰다. 힐난이 섞인 물음이었다.
"축하해. 네 프로메테우스 노릇이 성공적인 것 같네."
유혹마냥 나긋나긋한 비난이었다.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프리드는 조용히 발끝을 내려보다가 그의 괴도를 향해 눈을 돌렸다. 사슴처럼 아름다운 목덜미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주변은 더는 헛간이 아니었다. 그늘은 더욱 깊어져 사방에 뚫린 수렁으로 보이고, 연약하게 죽어가던 촛불은 날름거리며 제 몸집을 불렸다. 횃불이 모여 거대한 불쏘시개 더미를 만들었다. 한밤의 축제처럼 사람들이 불빛을 감싸곤 경쾌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팔을 꼬곤 빙글빙글 돌며 파트너를 바꾼다. 프리드는 홀린 듯이 그 움직임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팬텀은 같은 차림새로 게으르게 늘어져 있다. 오직 둘만이 축제의 방관자였다. 눈을 마주쳐 주지 않는 팬텀을 향해 프리드는 담담히 읊었다.
"나는 신이 아니야."
변명할 여지가 없는 회피였다.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죄로 프로메테우스는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 계몽주의를 옹호하는 그라고 해도, 이런 거창한 비유를 받아 삼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팬텀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애초에 프리드는 수많은 외침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여태껏 그의 주장을 가볍게 비아냥거리는 팬텀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지만.
"맞아, 너는 죽지."
팬텀은 신경질적으로 불빛을 노려보고 있다가, 이윽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프리드는 계속 팬텀을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하지 않는 그의 괴도는 낯설기만 했다. 이상한 꿈이다. 별도 없는 밤인지 팬텀 너머는 어둑어둑했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희미한 인영을 보기 전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괴상한 꿈이라고.
"아직은 아니지만."
바람을 타고 온 메스꺼운 냄새가 호흡에 섞여들었다. 그 인영은 얼핏 보기엔 거대한 빨래 더미 같았다. 산처럼 뾰족하게 서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빨랫감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뚱아리였다. 목을 잃은 시체였다. 짐승에게 씹힌 자국과 마차 아래에 깔린 듯 내장이 터진 것도 있었다. 프리드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재빨리 반대편을 살폈다. 여전히 경쾌한 웃음소리와 흥이 오른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즐겁게 떠들고 춤을 추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폭풍 앞의 깃발처럼 고개가 다시 돌아간다. 그럼 팬텀은? 터질듯한 걱정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전히 그는 프리드를 바라보지 않는다. 어쩌면 그럴 수 없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예상 못한 화상처럼 들었다. 눈을 내리니 팬텀 역시 복부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말라붙은 오래된 피가 여기저기 점철되어 있다. 프리드는 손을 뻗었지만 옷자락도 쥘 수 없었다.
이제 축제의 소음은 흉포하게 고막과 심장을 울렸다. 그의 허파로 만든 북을 흥에 미친 사람들이 치고 있다. 저 멀리 암흑 속엔 단두대도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과 벌레 먹은 모양까지 코앞에서 본 것과 꼭 같았다. 단두대엔 잘린 머리통들이 즐비했다. 막 자른 듯이 마지막 것을 느릿하게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아름답고 기다란 백발이었다. 반짝이는 은발을 본 것도 같았다. 금발이나, 흑발도. 그가 알아오고 사랑해온 모든 빛깔이.
오직 그의 것만 없었다.
"실례할게요, 이든 양. 다른 분께는 적당히 말해줄 수 있죠?"
주춧돌조차 금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재력으로 귀족령까지 사들인 말 많고 탈 많은 백작가의 외동아들. 사교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신사인 동시에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탕아. 길거리 로맨스 소설에 나올법한 휘황찬란한 타이틀은 모두 손에 거머진 매력적인 블론디는 메이드에게도 번듯한 예의를 갖췄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거만한 매너가 떠들썩한 인기의 이유라나.
"제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경박하지 않은 윙크도 곁들인다. 쓰잘데기 없는 한마디만 덜어내면 네 주변이 훨씬 조용할 텐데 말이야. 조근조근한 충고를 오늘도 어김없이 외면한 팬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어느 문 앞에서 멈춰서 열쇠를 구멍에 맞춰 꽂아넣어 돌리곤, 숙련된 시종처럼 똑똑 두어 번 노크했다.
문을 여니 동그란 쇳대가 이마에 들이밀어 진다. 당연하게도, 총구였다. 팬텀은 양손을 드는 대신 뻔뻔하게 뒷짐을 진 채 한 걸음을 성큼 옮겼다.
"일어났어?"
그가 가는 대로 총구가 밀려난다. 프리드는 아직까진 그를 죽일 생각이 없나 보다. 눈웃음을 지으며 살뜰하게 손을 뻗어 어깨와 팔을 매만졌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찾았담. 나름 잘 숨겨둔 총인데. 아주 조금 티스푼 절반만큼 겁을 먹었지만, 짐짓 여유롭다는 듯 가볍게 휘파람을 분다.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이 침실에서 프리드를 보게 될 줄이야. 얌전히 잠이 들어있을 때도 묘했지만 정신 차린 모습을 보니 더더욱 묘하게 들떴다.
"몸은 멀쩡하나 보네."
"내가 왜 너희 저택에 있는 거야?"
"어젯밤 기억 안 나? 끝내줬는데."
찰칵, 장전하는 소리가 났다. 팬텀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고쳤다. 밤새 손수 간호한 게 억울해졌지만. 뭐, 잘 벼린 날을 쥔 사람이 그럼 그렇지 어쩌겠는가.
"왕의 개가 기지를 죄다 엎어놓고 있는 와중에 거기 눕힐 수는 없잖아."
"설마 대포를 쐈어?"
"그 성깔을 누가 이겨?"
프리드가 한숨을 쉬며 총을 내려놓았다. 메르세데스의 화끈하다 못해 무모한 기세를 생각하면 놀라울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일을 벌여놓을 줄은 몰랐다. 루미너스나 팬텀이 말려줄 줄 알았지. 멍청하게도. 우선 눈앞에 있는 사람부터다. 그는 백작가 도련님의 숨겨진 이름을 꾹꾹 눌러 씹었다.
"팬텀."
그제서야 빌어먹을 도련님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팬텀은 날카로운 시선에 어제를 떠올렸다. 유리알 건너로 본 서슬 퍼런 눈빛을. 어린 시절의 한낮이나 연인의 속삭임처럼, 다시 한 번 조우하고 싶으나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말도 안 되게 굴러가는 집단에 몸을 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어쩌다가 이 고집불통 모임을 만나서. 팬텀은 제 팔자를 비관하며 말쑥하게 한숨을 쉬었다.
"워, 오해하지 마. 나는 네 목이 잘려서 땅바닥에 나뒹굴게 내버려두자고 했거든."
평소와 달리 침묵하는 프리드를 눈여겨보며 말을 이었다.
"너도 그러길 바랄 거라고 했더니, 대포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내 목을 자르겠다는데? 혁명대장도 아닌 일개 귀족 나부랭이가 그런 협박을 어찌 이기나."
"일부러 말했구나."
"그게 아니면 방법이 없었어."
누가 누굴 비난하는가? 팬텀은 이런 프리드를 기꺼이 여겨왔지만, 지금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아무리 팬텀이 손수 정교하게 계산한 작전이라도, 만에 하나 그들은 정말 프리드를 잃을 뻔했다.
"자꾸 애원하게 하지 마, 프리드."
다시 장난스럽게 고쳐 말한다.
"다수결이 너네 공화주의자가 좋아하는 거 아니던가. 그거 알아, 회원 중에서 네 죽음을 바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던걸?"
"…혁명은 다음 주야."
"단두대 앞에 내가 있어도 그럴 거야?"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팬텀은 그의 대답을 알아채곤 질린 표정을 지었다.
"네 역할은 순교자가 아니야."
"……."
"리더지."
둘은 잠시 서로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프리드는 꿈에서 본 팬텀을 떠올렸다. 그의 무의식이 구성한 대화 토막이 떠올랐다. 프로메테우스인지 뭔지, 그 이야기는 썩 새롭지 않았다. 팬텀은 늘 같은 맥락으로 그를 비난했다. 너는 여기서 제일 혁명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혁명을 굴리는 주체는 시민이지, 단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그런데 너는 줄곧 영웅처럼 군단 말이야. 얼마나 중세적-팬텀은 기꺼이 비웃었다-인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프리드?
누구나 이 위치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방패로 시민을 세우란 말인가? 프리드는 때론 답을 냈고 대부분은 외면했다. 그러나 고집 있게 구는 것치곤 그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 하지만 날 예외로 두지 말아줘."
널 예외로 두는 건 너 하나야. 늘 저 혼자만 최전선에 두지. 팬텀은 말꼬리를 잡으려다 말았다. 프리드가 지독스레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프리드는 건성으로 그러마 고개를 끄덕이는 팬텀을 붙잡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욕구를 억누르는 게 생각보다 힘이 들어서 그는 몰래 이를 악물었다. 충동적으로 입을 열어 꿈을 이야기할 뻔했다. 네가 죽는 꿈을 꿨다며 위로를 구걸하고만 싶다. 혼자 살아남는 꿈을 꿨다고, 더한 악몽은 없다고. 허나 팬텀이나 다른 모든 이들은 감정을 쏟아내기에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딛고 선 곳은 꿈 따위보다 더 악질적인 현실이었다.
프리드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장시간 밧줄에 묶여 피가 통하지 않아서 그의 팔과 다리는 얼룩덜룩하게 망가져 있었다. 며칠간 고스란히 굶어 왔기에 시야는 몇 분에 한 번씩 깜깜해졌다. 익숙한 고문으로 콧속이 시큰하고 허벅지는 납이 된 것만 같다. 그래도 땅을 짚고 스스로 일어서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전보를 보내. 평소처럼 광장에서 집회를 열되, 자정엔 세계수에 집합하라고."
"그러지요, 리더님."
'다 > 메이플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팬텀프리] 안개밤 (0) | 2017.10.02 |
---|---|
[팬텀프리] 밤무리잡이 (0) | 2017.10.02 |
[프리은월] 나약 (0) | 2016.04.24 |
[팬텀프리] 트친오락관 (0) | 2016.02.10 |
[흑프리프리] 메모 (0) | 2015.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