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장 잇기~ 존잘님들과 함께 했어요!
"현명한 당신이라면 잘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대마법사 나으리."
피아노 뒤의 작달막한 공간으로 두 몸을 구겨 넣으니 호흡조차 요란스러웠다. 호위병이 막 고개를 돌릴 참에 간신히 숨어들어 다행이었다. 능숙하게 숨을 죽이는 괴도에 비해 프리드는 들썩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써야 했다. 절대 체력 때문이 아니라, 도둑질에서만은 풋내기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긴장한 기색을 겨우겨우 찍어누르는 '대마법사 나으리’를 보며 괴도는 태연하게 눈썹을 까딱거린다. 빛나는 명성의 현직 괴도는 다 자기만 믿으라면서 걸음을 나설 때는 언제고, 막상 위험에 닥치자 능청맞게 코앞에서 선택지를 속살거렸다. 오른쪽으로 갈까, 아니면 왼쪽? 어쩌면 둘 다 꽝일지도 모르지. 상냥하기만 하던 눈에서 날 선 타박이 튕겨 나오니 그 모양이 여간 싱그러운 게 아니다. 프리드는 잔뜩 재미난 기색을 숨기지도 않는 얼굴을 쏘아보다가, 이내 제발 길을 이끌어달라는 애원을 버려버렸다.
“오른쪽."
“아, 후회할 텐데."
“오른쪽이에요, 괴도 나으리."
너라면 도발에 어울려 주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수에 어깨를 으쓱이다가, 냅다 오른쪽 귀퉁이로 달려가는 프리드의 뒤를 급하게 밟았다. 모서리 밖으로 삐죽 튀어나왔을 갈색 머리칼이 눈에 선하다. 재빨리 손을 뻗어 어리숙한 리더님을 당기니, 짧고 탄력 있는 손길에 순간적으로 코 끝이 맞닿았다. 아. 동그란 눈매를 보다가 팬텀은 피식 웃었다. 화들짝 놀라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걸 보아하니,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로군. 팬텀은 입이라도 맞출 듯 고개를 틀었다. 언제나 작은 여흥을 맛보는 것은 괴도의 신조와도 같다. 말간 피부는 바짝 다가온 입술에도 미동조차 없다. 그렇지만 친구, 숨은 멎었잖아. 먹잇감의 목덜미를 막 이빨 사이로 밀어 넣은 듯 하릴없이 느긋하고, 마냥 조바심이 난다. 결국엔 입만 다실 게 뻔한데도 그랬다.
뺨에 내려앉은 건 입맞춤이 아닌, 작은 합격 통보였다.
“소질 있네."
마른 어깨가 뻣뻣하게 굳더니, 몰아 내쉬는 숨과 함께 유연하게 풀어진다. 부풀었던 가슴이 긴장을 토해내며 와르르, 녹아가는 모양이 눈에 들어찼다. 손톱만큼도 없는 제 도둑 적성에? 농담할 정도로 안전한 상황에? 아니면, 키스가 아니라는 것에? 무엇에 그리 안심했는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 장난기가 얹혀 휘어지는 눈매가 썩 보기 좋다는 것만 알았다.
“역시 오른쪽이었구나."
“……아니거든."
의문을 삼키는 건 괴도의 적성이 아니다. 애초에 타인을 대동하고 길을 나서는 것부터가 그랬다. 프리드를 만난 이후로 자신만의 금기는 끝도 없이 악력도 없는 손아귀에 부서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대마법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는 괴도의 모양새를 뻔뻔하게 따라 하더니 가만히 눈짓했다.
“게으름은 이제 다 피운 거야?"
허. 알차게도 부려 먹네. 어울리지도 않는 밤 나들이를 먼저 청한 주제에 명확한 목적은 딱 잘라 숨기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저택에서 네 방식으로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데, 함께 가줄 수 있어?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말을 물릴 기색은 없었다. 도둑질에 가담하라는 말이지, 리더님? 얄밉게 붙은 존칭에도 프리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뭘 훔치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고? 그래. 담담한 대답에는 눈썹을 삐딱하게 세울 수밖에 없었다. 드러나는 항의에도 프리드는 요지부동이었다.
‘대가 없이는 움직이지 않아.'
사랑에 빠진 채 어떤 요구든지 들어주는 얼간이도 아니고. 목적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용만 당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며칠 후, 프리드가 나름대로 이것저것 꾸리며 그답지 않게 긴장한 모양으로 입을 떼자 팬텀은 스스로를 향해 한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붙잡히면 꼭 구하러 와줄 거지?'
그래, 이 얼간이 자식. 가만가만 물어오는데 냉담하게 외면할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혼자 무리 없이 빠져나올 수 있으면서 저리 말할 건 뭐람. 물론 오닉스 드래곤을 대동한 탈출은 매우 요란스럽겠지만. 그보다는 은근하게 유혹하는 괴도가 조용하긴 훨씬 조용하지. 도둑질하러 가는 대마법사님은 그에게 강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그런고로 묘하게 가벼워보이는 프리드의 걸음에 어쩔 수 없이 따라붙은 터다. 긴 복도 끝의 금고를 발견하자 냅다 고개를 돌려 팬텀을 응시하는 눈빛에 신뢰가 가득하다. 팬텀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곤 한 걸음 다가서며 손목을 가볍게 풀었다. 꼭 그렇게 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듯 몹시 매끄럽다.
하여튼 코 꿰인 내가 잘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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