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무겁다. 온몸이 만장일치 한 듯 구석구석 아리니 느릿느릿 굴러가던 머리조차 저렸다. 새끼발가락 한마디도 꼼짝하지 못하겠다. 무거운 눈꺼풀은 밤새 꽉 아물렸는지 들어 올리려고 한참을 애써야 했다. 일어나 가장 처음 본 것이 저리도 강렬하게 생긴 눈알 두 개인 일상에 이와이즈미는 용케 적응했다. 매너를 한 톨도 알지 못하고 코앞에 다가온 시퍼런 두 눈을 보니 서서히 제 처지가 떠오른다. 몇 달 전이였으면 기겁했겠지만, 오늘의 이와이즈미는 익숙하게 시선을 받아넘기곤 덤덤하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여, 잘 잤냐.”
“자지 않았다.”
“그러냐…….”
기껏 인사했더니 안 잤다는 우시지마도 마찬가지로 퍽 닳고 닳은 상황이었다. 이 자식은 남아도는 체력으로 밤을 꼬박 새우며 눈만 뜨고 있는 경우가 잦았다. 뭐, 자기가 괜찮다는데 내 알 바는 아니고. 온종일 저리 지켜봤다는 게 소름 돋았던 때도 있었지만 다 옛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새벽이면 늘 피곤에 절어 곯아떨어지는 탓에 꽉 끌어안아 오는 상대가 눈을 떴는지 안 떴는지는 논외로 굴러떨어졌다. 묵직한 팔을 무심하게 밀어내고 양팔을 쭈욱 피며 스트레칭을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곳이 입을 모아 차례로 우드득거리는 뼛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윽.
“몇 시?”
“다섯 시 반이다.”
망할. 한 시간은 잔 건가? 혹사당한 신체가 한없이 무거웠지만, 습관은 더 징그러운 것이다. 다섯 시 반이면 성실한 몸뚱아리는 아침 조깅을 위해 아무리 떡이 되어도 벌떡 일어난다. 한 달간은 뒤척이면서 뜨끈한 체온 안에서 게으름을 부렸건만, 그냥 빠딱빠딱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서 다시 잠을 청하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별 말없이 일어났다. ……정작 그런 때면 정말 조깅을 한적은 드물지만. 이와이즈미는 될 대로 되라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옆자리에서 여전히 쏟아지는 시선이 참 햇살 같다. 도무지 끊어지지가 않았다.
아우성치는 육신을 질질 끌며 침대에서 뚝 떨어지니, 방바닥에 길쭉한 수건 몇 개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다. 주로 샤워 후에 몸을 닦는 용도로 썼다. 아, 어제. 번개마냥 뜨끈한 기억이 내리쳤지만, 이와이즈미는 그저 눈을 잘게 뜬 채로 발로 수건을 차서 길을 만들었다. 만사가 귀찮다. 나중에 치워야지. 태평하게 어깨를 휙휙 풀어가며 방을 나서는 발걸음이 뚝 얼었다. 방 안은 그저 전채 요리였다는 듯 거실이 아주 제대로 난장판이다. 거실에 하나뿐인 탁자는 매끈한 표면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이는 탁자 위의 모든 물건이 죄다 바닥에 우르르 쏟아져 있었다는 말이다. 선물 받은 인테리어 퍼퓸이 깨졌는지 라벤더 향이 안개처럼 공기에 얽혀있었다. 저건 또 언제 박살 낸 거래. 전혀 기억이 없다. 기억나는 건 뒤를 졸졸 쫓아오는 저놈 체향 뿐인데. 바닥을 디딘 발바닥이 멀쩡한 걸 보니 기어코 우시지마가 알아서 잘 들고 왔나보다. 와카토시는 괜찮나. 망할. 다치고 그냥 잔 건 아니겠지. 쟤라면 가능해. 그제서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런 말 없이 휙 돌아서서 쭈그려 앉고는 큼지막한 발을 살폈다. 멀뚱히 발을 들어주는 폼이 웃겼다. 다행히 흠집 하나 없다. 잘했다는 듯이 탄탄한 종아리를 가볍게 토닥여줬다.
바닥에서 고개를 드니 베란다로 이어진 유리창에 손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크기 차이가 뚜렷한 손바닥이 뭔 짓을 했는지 난리가 났다. 이와이즈미는 그 자국에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을 휙 열었다. 맨몸에 닿아오는 찬 공기가 시리다. 블라인드 쳤으니까 괜찮겠지. 옆에서 우시지마가 블라인드를 더 꼼꼼히 치고 있는 모양을 보아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주방 식탁에 잔뜩 뿌려진 희끄무레한 자국을 보고, 다시 귀엽다는 생각은 철회했지만. 저걸 언제 치운담. 돈 주고 누굴 고용할 수도 없는 게 정말 답이 없었다. 뭐, 둘이면 금방 치우겠지. 태평한 생각에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씻기나 하자…….
이와이즈미는 모든 걸 미뤄두곤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곳이 제일 가관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샤워부스 옆에 달려있었던 방수커튼인데, 지금은 봉째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미친… 유력한 용의자인 이와이즈미 씨는 시치미를 뚝 체고 표정을 구겼다. 바닥에는 바디워시가 처참하게 줄줄 흘러져 있고 통은 누가 한번 제대로 밟았는지 찌그러져 있었다. 저 때는 정말 위험했다. 홍콩 가려다가 넘어져서 골로 갈 뻔 했다고. 샤워부스 옆의 유리판에도 손바닥 자국이 난잡하다. 발바닥 자국도 보이는 게, 아니 대체 어떤 자세로 한 거야? 어이가 없어져서 바닥에 나뒹구는 비누를 뻥 찼다. 빙글거리며 미끄러지는 비누를 보고, 한구석에 처박힌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그리곤 거울에 높게 붙어있던 덕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칫솔 두 개를 쥐었다. 이리될 줄 알고 일부러 저 높이 붙여둔 선견지명이 대견하다.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만 쓱 내미니 커다란 손이 덥썩 받아 쥐었다. 어디 보자, 치약이……. 이번엔 그 손이 손목을 채어가서 얌전히 치약을 짜주었다.
잠시간 욕실을 메운 건 치카치카 소리뿐이었다. 멍하니 거울을 마주 보던 이와이즈미는 부뜩 정신줄을 잡고 거울 속의 우시지마를 쏘아보았다. 봉이 떨어진 게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정도면 아예 커튼을 없애야 한다고.
“야… 내가 욕실에선 하지 말자고 했지.”
“박아달라고 한 건 너다, 이와이즈미.”
“네가 먼저 처량하게 쳐다봤잖아.”
왜 대답이 없지 싶어 옆을 바라보니, 입안 가득 채웠던 박하향이 새하얗게 지워졌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눈을 감아주며 반사적으로 꽉 쥐었던 주먹에 힘을 풀었다. 하여튼 뻔뻔한 자식.
“양치할 때는 키스하지 말라고.”
또 처량한 눈빛이나 하고. 아침 조깅은 글렀다 싶으니, 그제야 수치를 모르고 발을 무르던 한숨이 새어나온다. 커튼은 떼고, 유리로 된 건 이제 탁자에 올려두지 않고, 윤활제는 하나 더 사서 욕실에 두고 쓰기. 별거 아닌 리스트가 뇌리 속에 갈겨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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