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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트친오락관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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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오름






짝사랑은 추하고도 볼품없다.

질척한 감정에 젖어 떨어지는 주제에 꽃으로 피어난 게 꼭 그렇다. 변기 물 위에 동동 피어오른 알록달록한 꽃송이가 한 아름이다. 이와이즈미는 고인 침을 두어 번 내뱉곤 망설이지 않고 물을 내렸다. 축축하게 물을 먹은 꽃들이 회오리 모양으로 빙글빙글 쓸려 내려간다. 꽃잎 하나 없이 깔끔해진 변기를 확인하고, 이와이즈미는 등을 돌려 화장실을 나갔다. 물을 머금고 입을 헹구고 얼굴색을 살피는 일련의 행동들이 몹시 손에 익었다. 뭐, 10년간 이 빌어먹을 불치병을 달고 살면 자연스러워지는 게 당연하다. 꽃이니까 화단에 묻어줘야 한다는 고집을 피웠던 풋내나는 꼬맹이부터 꽃다발이 쉽사리 어울리지 않는 건장한 남고생까지,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모조리 꽃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다 한때의 치기어린 감정이다. 제 안에서 지독스레 짝사랑하던 멍청한 놈은 곧 흔적도 없이 죽어버리겠지. 그리고 마침내 괜찮아진다면, 철없던 시절의 방황이라 치부하며 웃어 넘길 수 있는 날들도 올 것이다. 

이리 되뇌기도 십 년째,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구토 후 차고 뜨거워진 귓가에 스스로 속삭이던 암시가 쓰디 쓰다.






도움닫기를 가쁘게 밟다가 힘껏 도약한다. 등허리가 공중에서 한껏 휘어졌다가 뻗은 팔부터 발목까지 탄력 있게 퉁겨진다. 뱃속이 허하고 목덜미가 시린 게, 아, 평소보다 살짝 낮았다. 그러나 손바닥에 닿는 공은 귀신같이 딱 맞아 들었다. 

“이와쨩, 오늘 급식에 돈까스 나왔다고 너무 많이 먹었구나~ 무거워서 잘 안 뛰어지는 거 아니야?"

이거 좀 소름 돋는데. 무거운 고개를 자존심 하나로 뒤로 돌려세우니, 얄미운 얼굴이 경쾌하게 입을 놀린다. 공이 통통 튀기는 소리가 울리기도 잠시, 저벅저벅 다가온 이와이즈미의 세터는 가볍게 손을 뻗었다. 이와이즈미는 숨을 고르며 자신을 참았다. 피하고 싶은 건지 얼른 가서 안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서 꾸욱 내리누를 뿐이었다. 방금 공을 올렸던 손바닥은 달아오른 두 뺨을 감싸 쥐었다가, 이마를 짚었다가, 목덜미와 귓바퀴를 어루만졌다. 사심 하나 없이 열이 있나 닿아오는 손길인데도 낯은 부끄럽게도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사심 있는 시꺼먼 사람은 따로 있지. 이와이즈미는 몰래 주먹을 말아쥐었다. 네 손이 더 뜨겁다고, 멍청아. 온 세상 사람 중 오이카와의 손만을 그리 느끼는 것이니 입 밖으로 꺼낼 도리가 없었다. 호흡이 열이 되어 목구멍 뒤로 꿀떡꿀떡 넘어가 속을 끓인다. 지겹도록 겪은 증상이다. 사랑이라 이름 붙이기엔 넌덜머리가 났다.

말마따나 지겹도록 봐온 얼굴인데도 마음은 새까만 바닥이 닳도록 두근거려 곤란하다. 눈을 맞추면 위험하겠는데, 하는 순간에 하얀 손가락이 야속하게도 턱을 들어 올린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 앙다문 어여쁜 입술. 눈을 꼭 맞춰오며 자신을 알알이 헤치며 파악하는, 태어나 가장 자주 마주한 얼굴. 어디 하나 새로운 구석이 없는 오이카와. 심장 밑바닥에 수천 송이를 피우고 수백번 끌어올려, 남몰래 모조리 버리게 한 오이카와 토오루.

현기증이 인다. 사소한 시선마다 숨이 멎지 않았다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여태껏 꽃을 토해내지 않았을 터다. 괴랄한 감촉이 뱃속에서부터 식도를 타고 올라온다. 빌어먹을, 또 시작이야. 이와이즈미는 까끌거리는 감상을 억지로 삼키며 오이카와의 손을 더디게 떼어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온다."

답을 듣고 대꾸할 여유도 없었다.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가볍게 발걸음을 떼며 체육관을 나서곤 미친 듯이 발을 놀렸다. 휘청거리면서 와르르 쏟아지는 계단들을 기어코 밟으며 내려간다. 체육관 뒤통수까지 뛰어 돌아가서야 고개를 바닥에 처박을 수 있었다. 비명을 지르듯 입을 벌리면 꽃잎이 후두둑 추락한다. 머리로 몰린 체온이 고장난 가로등처럼 쉴새 없이 깜빡인다. 바르르 떠니 서늘한 밧줄이 전신을 옥죄는 것 같았다. 비참하다. 문득 떠오른 어절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다.



신발코 앞에 자그마한 꽃무덤이 만들어졌을 때, 토닥이는 손길이 유순하게 등어리에 내려앉았다. 굳이 고개를 들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림자만 봐도 알아보는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괜찮냐, 늘 이게 뭐냐, 힘들겠지만 이렇게 고생할 거 그만두는 게 어떠냐, 누구인지만 말해주면 내가 도와주겠다, 온갖 걱정어린 말들을 내뱉고 속상하다는 듯 얼굴을 굳힐 게 눈에 선하다. 잠자코 진정하라는 듯이 쓸어주다가, 고르는 숨에 손바닥이 그저 얹혀있는다. 오이카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구토할 때보다 더한 소름이 가만가만 얹혀있는 손바닥 틈에서 기어올랐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현실감각이 흩어져,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었다.

"이와쨩."

이와이즈미는 제 이름을 들으며 눈을 꾹 감았다. 그렇게 하면 현실을 여밀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차갑게 식은 심장이 파들거리며 냅다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애타는 제자리걸음이 안타깝다. 한 문장만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들켰다.







"방금 들켰다, 라고 생각했지?"

숨이 덩어리가 되어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경직된 호흡을 알아챘는지 뺨을 잡아오는 손길이 보드랍다. 발치에는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물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눈을 드니 아까와 같은 시선이 오롯이 이와이즈미를 향해 내리쬐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반박을 하려고 입을 뗄 수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다. 해명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듯 말은 굴곡 없이 이어진다.

"10년간 이와쨩을 이렇게 고생시킬 사람이,"
“……."

"나말고 더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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