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녘
요즘 들어 해괴한 꿈을 꾼다. 누구누구의 잔소리마냥, 밤도 새지 않고 꼬박꼬박 제시간에 침대에 분명 누웠는데 말이야. 수일간 밤새 시달리니 억울할 따름이다. 무심한 이가 바닥에 내친 그릇처럼, 꿈에 대한 기억은 조각조각나 있어 본체 무슨 무늬였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파편이 의식을 찌른다. 오이카와는 꿈에 꿰어있다. 서브를 하거나 리시브 연습을 하는 겉모양은 퍽 멀끔했지만, 사정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사고가 뻣뻣하고 자꾸만 시야가 바닥을 굴렀다.
“야."
"……."
“야!"
“오이카와 씨는 괜찮아!"
반사적인 대답이었던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이와이즈미는 쭈욱 손을 뻗었다. 눈앞으로 아찔하게 다가오는 손끝에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윽! 이와쨩의 과잉처사 너무해! 그러나 내달릴 것 같았던 공격은 얌전히 발목이 묶인 듯했다. 굳은살이 박인 딱딱한 손끝이 눈 밑의 여린 살을 부드럽게 눌렀다. 섬세하진 않아도 다정한 손길이었다.
“잠을 자긴 한거냐."
귀신 같이 알아차리네, 이와쨩. 변명의 여지가 없기에 오이카와는 시치미를 내려두곤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단숨에 표정이 뾰족해진다. 평소에는 실컷 놀려먹었을 그조차 뻑뻑해서, 오이카와는 오므린 손모서리로 눈을 부볐다. 졸려요, 졸려요. 앞으로의 행보를 대비한 시위였다.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 행보에. 익숙한 체취에 기껏 코를 박자마자, 억센 손길이 뒷덜미를 잡고 훅 일으켰다. 윽, 너무해! 하고 항변하려 하기도 잠시, 꼼꼼히 얼굴을 뜯어보던 이와이즈미가 손을 내려 담담히 등을 감싼다. 오이카와는 군말 없이 꼭 끌어오는 힘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 어차피 다정할거라면 처음부터 다정하면 좋잖아. 이와쨩 완전 바보. 어르고 달래듯 가만히 뒤통수를 쓰다듬어 오는 손길에, 어젯밤 눈을 감을 때부터 날카롭게 이어져온 긴장이 발을 무른다. 정신이 미온한 물에 잠긴 듯 나른하고 평온해진다. 반칙이야. 이러면…털어놓을 수밖에…없잖아.
“요즘 자꾸 악몽을 꿔."
손길이 뚝 멎었다. 더 쓰다듬어달라는 듯 흰 뺨이 햇볕을 받은 목덜미에 부벼진다.
“개꿈이야."
내용을 묻지도 않고 터지는 대꾸가 썩 마음에 들어찼다. 단언하는 모양새가 그의 이와이즈미답다. 문득 이와이즈미가 상상할 자신의 악몽이 궁금해졌다. 쫓기거나 떨어지는 꿈? 한창 성장기일 때 자주 꾸었던 것이다. 아쉬웠던 시합의 순간일까? 그래, 이 또한 몇 번 꿨지. 오이카와는 자신도 손을 뻗어 탄탄한 등허리를 감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꿈? 이게 가장 비슷하네. 그치만 이와쨩과 함께라면 그리 두렵진 않을 것 같은데. 태평한 생각이라고 또 화내겠지. 고개를 틀어 아주 가까이에 있는 자신만의 아군을 바라본다. 네가 상상할 나의 악몽 속에, 너는 출연할 생각이야? 어때? 문득 호흡이 멎을 것만 같다.
이와쨩. 네가 나를 죽이려 하는 꿈을 꿔.
눈만 감으면 어제의 어둠을 딛는다. 오이카와는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와이즈미는…… 그의 곁을 떠났다. 실망을 가득 담은 마지막 표정이 햇빛 아래에서도 선명하다. 용사가 마왕을 죽이러 가. 우린 거기서도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어째서 였을까? 이와쨩이 나를 죽이러 와. 읊조리기만 해도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고 싶은 문장이다. 그 사실이 밤마다 현실로 성큼 다가와 숨통을 쥐어틀었다.
“내가 무시무시해 보이는 사람들한테 맞고 있으면 구해 줄거야?"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심드렁하다.
“뭐 그렇지. 쥐어 패줄까?"
“이와쨩 허세쟁이."
쿡 찌르는 단어에 대꾸하듯, 끌어안은 품이 꽉 죄어온다. 아파! 그래도 포옹이라는 점이 나쁘지 않아 자신도 꼬오옥 끌어안으니 순식간에 유치한 힘겨루기가 된다. 그러다가도 이 악물고 낑낑거리는 서로의 표정을 보고 동시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같이 맞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이와쨩, 참 멋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 말이야. 다음 질문을 혀에 굴릴 때 왜인지 입이 말랐다. 자신은,낮의 자신은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그럼……내가 아주아주 못된 짓을 주도하는 건 어때?"
눈덩이처럼 구른 고민이 무색하게, 이와이즈미는 역시 무심하게 답을 뱉는다.
“음, 쥐어 패줄까?"
“뭐야! 아깐 구해준다더니!"
“후두려 패서 제정신 만들어야지, 뭐."
뭐냐고, 그 과격한 처사. 하지만 납득도 가고 나름 마음에도 들었다. 맹랑하게 평가하는 것치곤 오이카와는 거의 대부분 이와이즈미의 마디마디에 합격점을 주어, 실상 의미 없는 기준이었지만.
"뭐가 그리 걱정이야."
허리를 짚은 손바닥이 조심스럽게 날개뼈 부근을 도닥인다. 간지러운 무게인데도 괜스레 품에 더욱 파고들게 되었다. 오이카와는 귀를 쫑긋 세웠다. 두근, 두근. 심장박동 틈에서 묵직한 목소리를 빠짐없이 받아 들으려고.
"난 네 편이야."
그건 정말 늘 가치 있는 노력이었다.
“정말?"
"뭘 또 되묻냐."
피식, 하는 웃음이 귓가에서 흩어진다. 제 몸 어디 하나 따듯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가 아주 옅은 각도로 휘어지고, 그 속의 눈동자가 오로지 저만을 꿰뚫을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 모든 것이 괜찮게 느껴진다.
붉은 천장이 암막을 가른다. 익숙한 색이었는데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져, 오이카와는 두어 번 더 눈을 세차게 깜빡여야했다. 부드러운 이불과 알맞게 조절된 조명에 어쩐지 호흡이 발을 절었다. 바로 옆 언저리에서 말이 트였다. 잠자리를 지켜보는 시종은 늘 익숙하다.
"좋은 꿈을 꾸셨나봅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쏘아붙이고 싶어도 요 근래 잠자리만 들면 세상 물정 모르는 듯 실실 쪼갠다는 건 자신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결국 오늘도 이어졌구나. 오이카와는 매섭게 말을 쏘았다.
"아니, 악몽이야."
너무 달아서 헛구역질이 나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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