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노답마이너 파시는 퐁님께 바칩니다.
욕조에서 자살하는 수학자가 그렇게 참신한 소재는 아니지. 로베르트는 느른하게 몸을 눕혀 욕조에 목을 기댔다. 손목의 벌어진 틈에서 손톱만 한 1들이 쉴 새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따듯하고, 새빨갛다. 참신하지 못하게. 퐁퐁 샘솟는 붉은 물결 사이로 노란 2가 동동 떠다녔다. 동그란 자태가 철없던 어린 시절의 고무 오리와 꼭 닮아 있어서, 젊은 수학자는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토록 쉬웠다면 진작에 혀라도 깨물었을 텐데. 로베르트는 숫자의 망령들 틈에서 게으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도무지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았다. 저승에 데려다줄 이를 얌전히 기다릴 뿐.
여전히 성실하지 못하구나, 테플로탁슬.
발끝을 움직여 동동 떠있던 2를 침몰시킨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가만히 수를 세었다. 네가 벌어다 준 시간이 많아. 어서 나오는 게 좋을 거야. 로베르트는 점잔을 빼며 눈을 감았다. 숨바꼭질의 술래가 늘상 그러하듯, 1부터. 언제나 1부터. 하나, 둘, 셋, 넷…….
아주 오래된 놀이였다. 목에서 달랑거리는 잡동사니를 쥐여준 채로, 그의 밤 상대는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수없는 밤에 수없이 이름을 뇌까려도. 로베르트는 그의 수학귀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다가도 선선히 이해가 갔다. 꽈배기를 더하기 싫어 투정을 부리던 어린아이는 이젠 사람을 셈할 줄 알았다. 풋내 나던 그리움도 상대의 부재를 꾸역꾸역 집어삼키더니, 검질긴 집착으로 몸을 불렸다. 수학과에 재학하고, 박사학위를 따고, 연구에 승리하고, 그 모든 행보가 목마름에 허덕이며 아주 오래된 스승을 핥았다. 이것 봐, 너를 위한 아벨이야. 네가 준 메달보단 훨씬 반짝거리네. 수학귀신이 그토록 사랑해마지않는 ‘수학자’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목표에 숨통을 건 행보는 딱히 어렵지도 않았다. 무구한 날들에 눈을 감지 못하며, 쾌히 수가 끓는 지옥에 몸을 던졌다. 네가 선사한 고통이라 여겼어. 도망치고 있는 거야? 내가 너를 원해.
영원한 꿈의 주인은 자비롭다. 이 정도라면 말을 걸고 싶어 못 배기겠지. '멍청이!'라고 쏘아붙이곤 영영 사라져버릴 덧없는 궁리를 하고 있을 거야. 로베르트는 새어 나오는 비소를 간신히 억눌렀다. 하여튼, 그의 스승은 존재하지 않는 답에 목을 매다는 걸 좋아해서 탈이었다.
꼭 만 번을 채우고서야 로베르트는 눈꺼풀을 열었다. 뒤로 젖힌 고개 탓에, 뒤집힌 광경 속에서 붉은 귀신이 서 있다. 뾰족한 수염이 달린 얼굴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의 행색이다. 가기 싫다고 떼를 쓰다가 억지로 끌려온, 여전히 심통을 숨기는 것 따위는 하나도 모른다는 그 얼굴. 그토록 고대했던 만남인데도 로베르트는 차분했다. 수학귀신의 발걸음은 숫자가 딱 떨어지는 수식과도 같았다. 부러 따분하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짓곤, 천천히 혀를 놀린다.
"너, 이제야 나타났구나."
로베르트가 말했다.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마지막 두 대사는 원작에서 따왔습니다. 에휴....<<수학 귀신>>을 읽고 숫자놀음이나 합시다...아니면 호모 놀음..........퐁님 글 두번 읽으세요, 여러분... 이 컾은 미쳤습니다.